청춘의 끝, 그 너머를 묻다
영화 <해피엔드>(2024, 네오 소라 감독)는 처음엔 고등학생들의 우정과 성장, 풋풋한 감정을 그린 잔잔한 이야기를 예상했어요. 하지만 관람 후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먹먹하게 남을 만큼, 이 작품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과 혼란,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연대의 소중함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오늘은 이 영화를 관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줄거리와 인상 깊었던 장면, 그리고 남는 여운까지 솔직하게 나눠보려 합니다.
개봉 : 2025.04.30
감독 : 네오 소라
출연 : 쿠리하라 하야토, 히다카 유키토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13분
장르 : 드라마
국가 : 일본
줄거리
근미래 도쿄, 불안한 세상 속 두 소년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일본, 도쿄입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인 고등학교 3학년인 유타(쿠리하라 하야토)와 코우(히다카 유키토)는 음악 동아리 친구들과 즐겁고 자유로운 나날을 보냅니다.
늦은 밤 학교에 잠입한 그들은 교장의 고급차량에 장난을 치고, 분노한 교장은 학교에 AI 감시 시스템 ‘판옵티’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 시스템은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복장, 흡연, 나쁜 행동 등이 자동으로 별점이 매겨집니다.
학교 밖 일본은, 총리 퇴진 시위가 거세지고 그러자 공권력을 동원해 경찰은 불심검문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재일 교포 4세인 코우는 차별과 위협을 받게 되고, 어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도 혐오 낙서가 쓰입니다. 그리고 학교에 자위대 지원 모집을 위해 홍보를 나온 날, 일본 국적이 아닌 학생들을 교실밖으로 내보내며 배제시킵니다. 이렇게 일본의 사회는 점점 더 획일화와 통제, 소수자 배제와 혐오의 분위기로 흘러갑니다.
유타는 겉으론 가볍고 밝은 장난기 많은 소년이지만, 속으론 가족의 해체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습니다. 코우 역시 일본 국적이 없는 교포 4세로 불안을 안고 있지만, 그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죠. 자유롭기만 하던 동아리 친구들은 각자 진로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고, 학교의 부당함과 사회 문제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한 코우는 사회와 미래(진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마냥 가볍기만 한 유타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내가 유타와 대학생 이후에 만났어도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결국 소외된 학생들은 교장과 단판을 짓기 위해 교장실 점거농성을 하게 되고 결국 교장은 자동차 사건의 주범이 자백하면 AI 감시시스템을 철거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유타는 본인이 단독으로 한 장난이라고 자백하고 퇴학을 당합니다. 침묵한 코우는 기다리던 대학 장학금(교장 추천)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졸업식날 육교 위, 예전과 다른 어색함이 감돌고 코우는 '큰 빚을 졌다' 말합니다. 유타는 예전처럼 간지럼 장난을 치고 인사하며 헤어집니다.
우정, 갈등, 그리고 멈춰버린 순간
영화는 유타와 코우, 그리고 그 주변 친구들의 일상을 따라갑니다. 학교에서의 소소한 사건, 가족과의 갈등, 진로에 대한 고민, 그리고 사회 시스템의 압박이 교차하며, 두 소년의 우정은 점차 깊어지지만 동시에 미묘한 균열도 생깁니다.
영화에서 지진 경보가 자주 울리는데, 지진이 발생하는 거대한 구조물 아래에서 불안에 떠는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서로를 지키려 애쓰는 유타와 코우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또, 음악 기기를 빼앗긴 주인공들이 교무실로 몰려가는 롱테이크 장면은, 청춘의 에너지와 억눌림, 그리고 작은 저항의 의미하는 듯합니다.
결정적인 순간, 유타는 코우와의 거리(물리적, 심리적 모두)를 상징하는 육교 위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선을 넘어 코우를 간지럽히는 장난(평소 하던 장난)을 칩니다. 바로 이 순간, 화면이 멈추고 음악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 정지된 화면은, 현실에선 각자의 길을 가야 할 두 소년이지만, 함께했던 그 찰나의 우정만큼은 영원히 남길 바라는 염원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청춘의 외피 속 묵직한 메시지
<해피엔드>는 단순히 청춘의 아름다움만을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시와 통제, 소수자 배제 등 현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야 할 인간적인 연대, 서로를 향한 손길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습니다. 영화는 “우리는 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불안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저항과 연대의 의미를 곱씹게 만듭니다.
그리고 학교와 사회 문제에 본인의 의견을 표현하고 그 문제에 직면하고 소리내려 했던 코우와 그런 것엔 전혀 무관심하고 외면했던 유타. 영화의 끝엔 코우는 침묵했고 유타는 소리냈습니다. 하지만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래도록 남는 여운, 우리 모두의 해피엔드
네오 소라 감독의 '헤피엔드'는 보면서 '감독이 한국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적인 정서가 담겨 있는 영화였습니다. 사회적,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면 관심을 가지고 나서는 한국인들을 보며 이 영화가 한국 관람객들에게 많이 공감될 거 같다는 네오 소라 감독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그래서일까?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해피엔드>를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영화 속 멈춰버린 그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각박한 세상, 불안한 미래 속에서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했던 찰나의 기억만큼은 영원히 남길 바라는 그 마음. 이 영화는 청춘의 끝, 혹은 사회의 끝에서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서로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는지를 조용히 묻습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셨다면, 여러분은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또, 유타와 코우의 멈춰버린 순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해피엔드>는 단순한 해피엔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인생에 남는 소중한 ‘기억’에 관한 영화임을, 저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그 답을 찾고 싶다면,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를 꼭 한 번 경험해 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