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의 색다른 단편, ‘쥐잡이 사내’를 만나다
넷플릭스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의 로알드 달 단편 컬렉션을 하나씩 챙겨보던 중, ‘쥐잡이 사내(The Rat Catcher)’를 드디어 감상했습니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나 ‘백조’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진 이 작품은, 특유의 연극적 연출과 기묘한 분위기로 짧은 러닝타임 내내 묘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앤더슨 감독의 팬이거나, 로알드 달의 블랙 유머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한 번 볼 만한 작품이었어요.
공개일 : 2023.09.27
감독, 각본 : 웨스 앤더슨
출연진 : 레이프 파인스, 루퍼트 프렌드, 리처드 아이오아디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17분
원작 : 로알드 달 단편소설
줄거리와 감상 후기
쥐잡이 사내, 그리고 마을의 주유소
영화의 무대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주유소입니다. 이곳의 직원 클로드(루퍼트 프렌드)와 그의 친구이자 기자(데브 파텔)는 최근 마을을 어지럽히는 쥐들을 퇴치하기 위해 ‘쥐잡이 사내’(랄프 파인즈)를 부릅니다. 이름도 없는 이 쥐잡이 사내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허름한 차림에, 걸음걸이와 행동, 심지어 얼굴까지 쥐를 꼭 닮은 인상. 마치 인간 쥐를 보는 듯한 기이한 느낌이 들죠.
쥐잡이의 전문성과 기묘한 방식
쥐잡이 사내는 자신만만하게 쥐를 박멸하는 여러 방법을 설명합니다. 하수구에 쥐가 있을 땐 석고가루가 든 봉투를 천장에 매달아 쥐가 갉아먹게 유도하고, 침에 젖은 석고가루가 쥐의 목을 막아 죽인다는 식입니다.
건초더미에 쥐가 있을 땐, 치명적인 약을 머금은 귀리를 준비하지만, 쥐가 의심이 많으니 며칠간은 깨끗한 귀리로 경계심을 풀어야 한다고 말하죠. 이 과정에서 쥐잡이 사내의 집요함과 집착, 그리고 쥐와 닮은 사고방식이 드러납니다.
계획의 실패와 충격적인 퍼포먼스
하지만 쥐들은 귀리를 먹지 않고, 쥐잡이 사내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페럿(족제비과 동물)과 쥐를 꺼내 직접 사냥을 시연합니다. 페럿이 쥐를 사냥하는 장면은 꽤나 충격적이고, 클로드와 친구는 경악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쥐잡이 사내는 손도 대지 않고 쥐를 죽이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쥐를 주유기 위에 올려놓고, 뒷발을 묶은 뒤 집요하게 쥐를 노려봅니다. 결국 쥐는 공포에 질려 발작하다가 죽고 맙니다. 이 장면에서 쥐잡이 사내의 집착과 광기, 그리고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결말과 여운 : 쥐, 그리고 인간
쥐잡이 사내는 결국 쥐를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쓸쓸히 자리를 떠납니다. 남겨진 클로드와 친구는 왜 쥐들이 귀리를 먹지 않았는지 의문을 품습니다. 결론은, 쥐들이 이미 건초더미 속에서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 영화는 실종자 전단지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모습으로 끝나며, 건초더미 안에서 무언가 끔찍한 일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
영화 '쥐잡이 사내'는 로알드 달 원작 단편의 핵심 줄거리와 분위기를 상당히 충실하게 재현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1. 결말의 암시와 직접성
• 원작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반전은 쥐들이 독귀리를 먹지 않은 이유가, 건초더미 안에 있던 사람(올레 지미)의 시체를 쥐들이 이미 배불리 먹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이 끔찍한 진실은 로알드 달의 또 다른 단편 'Rummins'에서 직접적으로 밝혀집니다.
• 영화에서는 이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거나 설명하지 않고, 기자가 “건초더미 안에 귀리보다 영양가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라고 추측하는 식으로만 암시합니다. 즉, 영화는 원작의 잔혹한 반전을 완곡하게 처리합니다.
2. 쥐잡이 사내의 묘사와 연출
• 영화는 쥐잡이 사내의 행동과 외모, 쥐를 잡는 방식(석고가루, 독귀리, 족제비, 맨손 사냥 등)을 매우 상세하게 보여주며, 캐릭터의 기이함과 광기를 시각적으로 강조합니다.
• 원작도 쥐잡이 사내의 집착과 전문성을 묘사하지만, 영화는 웨스 앤더슨 특유의 연극적이고 블랙코미디적인 연출로 이를 더욱 극대화합니다.
3. 분위기와 메시지
• 영화는 하층 노동계급에 대한 시선, 생명과 도축에 대한 인간의 이중성 등 사회적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 원작 역시 인간의 잔혹성과 사회적 계급을 비판하지만, 영화는 이를 더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 특징입니다.
4. 내러티브 구조
• 영화는 내레이션과 연극적 장치, 반복되는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원작의 분위기를 색다르게 해석합니다.
• 원작은 더 간결하고 건조하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어른들을 위한 기묘한 동화, 불편함과 여운을 남기다
‘쥐잡이 사내’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입니다. 웨스 앤더슨 특유의 연극적 연출, 반복되는 배경, 그리고 기묘한 색감은 이 작품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쥐를 닮은 사내의 집요함과, 인간과 동물, 생명과 도축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이 영화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단순한 오락보다는 인간 본성과 사회적 계급, 그리고 불편한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죠.
관객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한 번쯤은 이 기묘한 세계에 빠져보길 추천합니다. 단순한 쥐잡이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어두운 면과 사회적 시선을 꼬집는 웨스 앤더슨의 시선이 궁금하다면 꼭 감상해 보세요.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로알드 달과 웨스 앤더슨 감독의 만남인 단편 영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백조', '독', '쥐잡이 사내'는 각각의 영화로 나와 있기도 하고, 하나의 영화로 나와 있기도 해요. 저는 각각 단편 영화로 먼저 보았지만 하나로 된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외 3편'을 보시면 로알드 달로 나오는 페이프 파인스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더 좋았어요.
로알드 달과 웨스 앤더슨 감독의 넷플릭스 단편 영화, 4편의 영화가 각각의 매력이 있으니 모두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평점
- 6.0 ( 개봉)
- 감독
- 웨스 앤더슨
- 출연
- 랄프 파인즈, 리처드 아이오와디, 루퍼트 프렌드
- 평점
- -
- 감독
- 웨스 앤더슨
-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랄프 파인즈, 데브 파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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