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와 베끼기’를 읽으며, 글쓰기에 대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다
글을 쓴다는 건 늘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일입니다. 아일린 마일스의 에세이 『낭비와 베끼기(For Now)』는 그런 내 마음에 아주 솔직하게 말을 걸어온 책이었어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과 ‘내가 뭘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마일스는 “낭비해도 괜찮고, 베껴도 괜찮다”라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마치 나만의 작은 방에서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다정하게 느껴졌어요.
오랫동안 나는 '중요한 것은 이곳에 존재하는 것, 현재에 있는 것'이라는 개념을 뒷받침하는 온갖 철학으로 무장해 왔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이곳으로 돌아오고,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며, 그 감정을 베껴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알고 보니 글쓰기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일을 해보고 있다.
아일린 마일스의 에세이 ‘낭비’와 ‘베끼기’, 그 솔직한 고백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아일린 마일스가 자신의 글쓰기 인생을 아주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는 점이에요. 마일스는 글이 지지 않는 시간,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남의 글을 베껴보는 시간까지 모두 ‘글쓰기’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낭비’라고 생각하는 그 시간들이, 사실은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줘요.
P. 29
작가가 되려면 정말 많은 시간이 들고 , 그렇기에 시간을 굴릴 줄 알아야 한다. 내 경험은 그랬다. 마치 해변으로 밀려와 죽은 물고기를 굴려대는 개처럼 말이다. 아니면 마구간 속 말의 몸뚱이 아래 똥 무더기에 선 채로(벌벌 떨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한 마리 개(내 개)처럼. 똥이 너무 많고, 말이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시시각각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전부인 이런 일로 인생을 살아가려 한다면, 대단한 일이다. 나는 시인으로 살아가며 기꺼이 시간을 낭비하기로 했기에 장갑을 던져 도전에 응했고, 그 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내가 작업하는 장소가 바로 그 무(무)다.
특히 ‘베끼기’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마일스는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그대로 따라 써보고, 그 문장에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덧붙여보는 연습을 권합니다. 이 과정에서 남의 언어가 조금씩 내 것이 되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해요. 저 역시 이 책을 읽고 나서, 남의 글을 따라 써보는 연습을 해봤는데, 정말 내 안에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P.44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스케치북과 목탄연필을 받은 기억이 난다. 우리 모두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귀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렸다. 나는 평소에 그리 세부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 순간의 흥분과 두려움을 감당하려면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늘잎 하나하나까지도 전부 베껴 그려서 귀가한 아버지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았던 것 같고 심지어 트리 그림을 완성한 기억도 없지만, 크리스마스트리를 베껴 그렸던 기억, 베끼는 일이 내 마음을 가라앉혀주었고 세상과 관계 맺도록 해주었다는 것은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그것을 원했다.
줄거리와 주요 내용
『낭비와 베끼기』는 단순한 글쓰기 조언서가 아닙니다. 책은 마일스가 시인으로 살아오며 겪은 다양한 경험들—글이 막힐 때의 답답함, 남의 글을 부러워하는 마음,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초반에는 글이 써지지 않아 방황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마일스는 그 시기를 ‘낭비’로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이 쌓여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냈다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베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남의 글을 베껴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감각과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해요.
책의 중반부에서는 마일스가 실제로 좋아했던 시인의 문장을 따라 써보고, 그 문장에 자신의 감정을 덧붙여보는 구체적인 연습법이 소개됩니다. 이 과정에서 ‘베끼기’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중요한 연습임을 깨닫게 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마일스는 글쓰기가 결국 자기 자신과의 대화임을 강조합니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현재’에 도달하는 글쓰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하죠.
P.46
왜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내가 세계에 존재하며 느끼는 이 깊은 편안함/불편함, 그리고 전념이라는 선택지와 관련 있을 거다. 내가 온종일 가만히 앉아 베끼기만 한다면 그것이 내게 주어진 최선의 선택지일 것이다. 그건 항우울제도 아니고, 그렇게 짜릿한 일도 아니고, 유산소 운동도 아닌, 그저 일종의 주문을 읊는 행위인데, 나는 종교적인 이유로 그 일을 하고 또 한다. 그러니까 그게 내 기본자세라는 뜻이다.
내 경험과 책이 주는 위로
저 역시 글을 쓸 때면 ‘이 시간에 뭘 하고 있나’ 하는 자책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이 써지지 않는 시간도 결국 내 글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리고 남의 글을 따라 써보는 연습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점도요.
마일스는 “예술은 비효율성에서 온다”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이 저에겐 큰 위로였어요. 효율만을 따지는 세상에서, 글쓰기만큼은 마음껏 낭비하고, 남의 것을 베껴보며, 그 속에서 나만의 언어를 찾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P.131
내가 이 일을 하는 방식 전체에는 그 산물 안에 아주 많은 세계를 담고자 하는 야망이 실려 있다. 그 세계가 좀 보잘것없이 어수선하고 불결하도록, 그래서 사람들이 건물 안에 들어가듯 진입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건물은 공공건물이다. 작품을 끝내는 순간 여기 온 사람들의 것이니까. 내가 가장 먼저 그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그 뒤에는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게 '나의 글쓰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흔한 실천이다. 그것이 내 꿈이다.
‘나만의 현재’에 도달하는 글쓰기, 그리고 작은 용기
『낭비와 베끼기』는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조급해하지 말라’고, 그리고 ‘남의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글쓰기는 정답이 있는 길이 아니라, 남의 것을 내 것으로 소화해 가며 점점 더 ‘나’에 가까워지는 과정임을 이 책은 보여줍니다.
저 역시 이 책을 통해, 글을 쓰는 시간 자체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됐어요. ‘낭비’와 ‘베끼기’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필수적인 과정임을 느꼈습니다.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는 분이라면, 마일스의 이 솔직한 에세이를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아마 이 책을 덮는 순간, ‘나만의 현재’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