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진실을 다시 마주하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클로즈업(Close-Up) 리뷰를 찾아오셨다면, 단순한 영화 줄거리 그 이상을 기대하실 겁니다. 아마도 이 영화가 다루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적인 이야기까지 궁금하실 거예요.
1990년에 개봉한 클로즈업은 평단의 사랑을 받은 걸 넘어,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꾸준히 언급됩니다. 이란 영화에 관심이 있거나 영화라는 매체의 철학적 깊이를 탐구하고 싶은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작품이죠. 클로즈업은 제게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경험이었습니다.
1. 영화 소개 – 실제 인물들이 만든 실화극
제작 배경
- 감독 / 각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인간적인 시선과 탐구적 연출로 유명
- 촬영: 알리 레자 자리인다스트(Ali Reza Zarrindast)
- 제작: 하산 아가 카리미(Hassan Agha Karimi)
- 편집: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주요 출연진 (모두 실존 인물 자신이 출연)
- 호세인 사브지안(Hossain Sabzian): 실직한 인쇄소 노동자, 열렬한 영화 애호가.
- 모센 마흐말바프(Mohsen Makhmalbaf): 주인공이 사칭했던 이란 유명 감독.
- 아항카 가족: 아볼파즐, 메흐르다드, 마흐로크, 모누체르 아항카 – 피해자 가족.
- 호세인 파라즈만드: 사건을 취재한 기자.
- 기타: 나이어 모세니 조누지, 아흐마드 레자 모야예드 모세니.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본인이 직접 출연, 인터뷰 진행.
이 영화의 특별함은 전문배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가 모두 자신으로 출연해 다큐멘터리와 재연극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형식이 완성됐습니다.
2. 줄거리 – 사칭, 정체성, 그리고 용서
감독 사칭 사건과 체포
호세인 사브지안은 가난하고 외로운 남자입니다. 그는 이란의 유명 감독 모센 마흐말바프로 행세하며 아항카 가족에게 다가갑니다. 마치 그들의 집을 영화 촬영 장소로 쓰고, 가족을 배우로 기용하려는 것처럼 꾸밉니다. 처음엔 감독에 대한 존경심이었지만, 점차 돈을 빌리고 방문을 지속하면서 가족의 기대를 키웁니다.
그러다 잡지 속 마흐말바프의 사진과 그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가족은 기자를 초청하고, 결국 진실이 드러나 체포됩니다.
현실과 영화가 만나는 재판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재판까지 직접 촬영하며, 피해자인 아항카 가족과 실제 모센 마흐말바프, 그리고 사브지안을 한 장면 안에서 마주하게 합니다. 사브지안은 가난과 외로움, 영화 사랑, 존경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사칭했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진심은 피해자 가족과 재판부를 움직여 조건부 용서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장면 – 용서와 영화의 힘
영화는 사브지안이 진짜 마흐말바프를 만나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아항카 가족의 집으로 향합니다. 꽃을 주고받으며 웃는 순간,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부드럽게 풀립니다.
3. 주제 분석 – 현실, 계급, 그리고 영화의 마법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 허물기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와 재연을 절묘하게 섞었습니다. 관객은 실제 사건과 그 재현을 동시에 목격하며, 사실과 기억, 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계급과 사회적 시선
이 영화는 단순한 사칭 사건을 넘어, 이란 사회의 계층 문제를 비춥니다. 예술을 사랑했으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한 남자가 ‘유명인의 가면’을 쓰고 잠시나마 다른 삶을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주는 치유와 자기 발견
키아로스타미의 카메라는 사브지안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마음의 결핍을 보게 합니다. 재연과 관찰을 통한 영화 속 과정은 그와 관객 모두에게 '이해'와 '치유'를 제공합니다.
4. 영화적 성취와 유산
서사 파괴와 새로운 형식
재판 장면, 인터뷰, 그리고 일상의 순간들이 교차하며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심지어 사브지안과 마흐말바프과 함께 오토바이를 달리는 장면에서 음질이 떨어지는 것도 날것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비평가들의 평가와 영향력
클로즈업은 진실과 허구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란 영화사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며, 다수의 감독에게 영감을 주었고 지금도 영화 예술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입니다.
5. 개인적인 감상 – 여전히 울림이 남는 이유
이 영화는 솔직한 감정과 독창적인 구조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현실과 연출이 맞닿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사건 기록 이상의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거짓말을 했지만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를 향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피해자 가족의 용서는 단순한 사건 이상의 깊이를 전달합니다.
의미를 향한 인간의 여정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클로즈업>은 사람이 왜 거짓을 말하는지, 그리고 그 거짓이 어떻게 용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경험해 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