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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클레어 키건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용기

by happyjauin 2025. 5. 15.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즘 정말 많은 분들이 찾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나눠보려고 해요. 이 책, 사실 두께도 얇고(116쪽!) 한 번에 쭉 읽을 수 있을 만큼 부담 없지만, 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지는 그런 소설이에요.
저도 처음엔 ‘짧아서 금방 읽겠지’ 싶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오히려 더 오래 곱씹게 되더라고요. 일상의 작은 선택, 그리고 그 사소함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께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줄거리

이야기의 배경은 1980년대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한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기예요. 주인공은 빌 펄롱이라는 남자입니다. 그는 석탄과 장작을 배달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평범한 가장이에요. 빌은 어릴 적 아버지 없이 자랐고, 어머니는 미시즈 윌슨이라는 부잣집에서 가사 일을 하며 그를 키웠어요. 어머니의 죽음으로 빌은 미시즈 윌슨과 주변 사람들의 작은 친절 덕분에 지금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을 압니다.

어느 날, 빌은 수도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납니다. 소녀는 맨발에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빌에게 도와달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요. 빌은 당황해서 거절하지만, 그 순간 수녀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빌은 아내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지만, 아내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선을 긋죠. 여기서부터 빌의 내면에 작은 균열이 생깁니다.
 
얼마 후 이른 아침에 가게 된 수녀원에서 석탄광에 갇혀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합니다. 숨바꼭질하다 그런 거라는 원장의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합니다. 이후 빌은 수도원에서 본 소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그곳이 단순한 수도원이 아니라, 사회에서 버려진 소녀들이 감금되고 강제노동을 당하는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죠. 실제로 이 세탁소는 1996년까지 아일랜드에 존재했고,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고통받았다고 해요. 빌은 자신도 어릴 적 도움을 받으며 자랐던 기억, 그리고 미시즈 윌슨, 네드 등 주변의 작은 친절을 떠올리며 갈등합니다.
 

P. 54

펄롱은 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은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결국 빌은 용기를 내어 다시 수도원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녀를 데리고 나와 자신의 집으로 향해요. 길거리에서 사람들은 빌과 맨발의 소녀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지만, 빌은 처음으로 진짜 행복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작은 친절과 사랑을 다시 누군가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 거죠.

 

P. 119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의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이 소설의 결말은 아주 조용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큰 울림을 남깁니다. 빌의 선택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독자에게 상상할 여지를 남기고 끝나요.

 

1980년대 아일랜드 사회적 상황

1. 경제적 침체와 구조적 취약성

1980년대 아일랜드는 극심한 경제적 침체에 시달렸어요. 오랜 영국 식민지배와 19세기 대기근 등 역사적 아픔이 겹치면서, 경제적 자립이 약하고 사회 전반이 불안정했죠. 실업률이 높았고, 많은 이들이 빈곤에 시달리며 더 나은 삶을 찾아 해외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2. 종교와 사회의 밀폐성

이 시기 아일랜드 사회는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매우 컸어요. 교회는 정치와 결탁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고, 그 결과로 사회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으로 굳어졌죠. 특히 ‘막달레나 세탁소’처럼 미혼모나 사회적 약자를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감금·강제노동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현실을 대부분의 주민들은 알고 있었지만, 침묵하거나 외면했어요.
 

3. 사회적 마비와 변화의 어려움

아일랜드 사회는 오랜 억압과 침체로 인해 마비된 듯한 분위기가 강했어요. 부조리와 부패, 그리고 이를 묵인하는 침묵이 일상화되어 있었죠. 소설 속 주인공 빌 펄롱이 겪는 갈등과 행동은 바로 이런 닫힌 사회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의미를 갖습니다.
 

P.120

최악의 일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ㅡ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올라가는 펄롱은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마무리

 

1980년대 아일랜드는 경제적 빈곤, 종교 권력의 횡포, 사회적 침묵이 뒤엉킨, 변화가 쉽지 않은 분위기의 나라였어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바로 이런 시대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배경으로, 한 사람이 작은 용기로 세상에 던지는 파문을 그려냅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없이, 평범한 한 사람이 자신의 양심과 마주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소한 선택’을 하며, 그 선택들이 결국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저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후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앞으로 빌의 가족은 어떻게 될까? 그의 딸은...?' 이런 현실적인 걱정을 먼저 하게 되었어요.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용기'를 내기 위해선 언제나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나와 가족의 미래가 걸려있는 일, 이렇게 큰 용기를 낼 자신은 없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친절이나 외면했던 일들에 앞으로는 조금 더 용기 내어 손을 내밀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게 되었어요. 

짧지만 진한 여운, 그리고 일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여러분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오늘도 소소한 친절과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르포작가 은유 추천 * 2022 오웰상 소설 부문 수상 * 킬리언 머피 주연·제작 영화화 2023년 4월 국내에 처음 소개된 『맡겨진 소녀』로 국내 문인들과 문학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클레어 키건의 대표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다산책방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작가가 전작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소설로, 자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2022년 부커상
저자
클레어 키건
출판
다산책방
출판일
2023.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