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이 책은 한 번 읽으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작품이에요. 저도 최근에 다시 읽었는데,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때론 눈물이 핑 돌기도 했어요.
이 책을 보시는 분들 중 어떤 분은 소설의 내용은 알지 못한 채 '한강 작가 소설'이라는 사실만으로 보신 분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분은 소설의 배경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이 책을 '한강 작가의 소설'이라는 것이라는 사실로 처음 접했고, 간략한 내용을 알게 된 다음 잠시 망설였어요. 읽은 후 느낌도 읽기 전 예상처럼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이들의 이야기는 아프게 다가왔어요. 이 일을 겪지 않은 우리들도 이렇게 가슴 아픈데 직접 겪은 이들은 오죽할까?
이 글에서 아픈 역사를 잊지 않은 한강 작가 소설『소년이 온다』의 줄거리와 제가 느낀 점을 솔직하게 나눠보려고 해요.
소설의 줄거리와 후기
『소년이 온다』는 총 6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어요.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고, 시점도 바뀌어서 다양한 인물의 시선으로 5·18을 경험하게 해 줘요. 그래서 한 사건이 여러 겹의 감정과 기억으로 다가오죠. 대화에 따옴표가 없는 것도 특징인데, 이 덕분에 소설 전체가 조용하고, 마치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요.
1장 어린 새 – 동호의 이야기
첫 장은 중학교 3학년 동호의 시점이에요. 동호는 친구 정대와 함께 시위에 참여하다가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을 목격해요. 혼란 속에서 정대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걸 보지만, 동호는 자신도 죽을까 봐 도망치고 말죠. 죄책감에 시달리던 동호는 정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게 돼요. 결국 동호는 도청에 남아 있다가 계엄군의 진압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 1장은 한 소년의 시선으로 5·18의 참혹함을 보여줘요. 동호의 용기와 죄책감,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어요. 마지막 군인들이 오기 전 날, 동호는 본인을 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온 어머니를 뿌리치고 도망가며 '6시에 여기 문닫는대요. 엄마. 문 닫으면 나도 들어갈라고요'라고 말한 뒤 결국 돌아가지 않아요.
동호는 그때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가려고 했으나 마지막에 마음이 바뀐 것일까? 그 어린 동호는 무슨 마음으로 남았을까? 친구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해도 과연 우리는 남을 수 있을까?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됩니다.
P.17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것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으로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전혀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처럼 너는 혼란스러웠다.
2장 검은 숨 – 정대의 혼
2장은 죽은 정대의 영혼 시점이에요. 정대는 자신이 죽었다는 걸 인식하고, 부패해 가는 자신의 시체와 남겨진 가족, 친구들을 바라봅니다. 군인들이 시신을 쌓아 불태우는 장면에서, 정대는 자신이 육체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음을 느끼며 하늘로 떠나요.
- 2장은 죽은 자의 시선에서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보여줘요. 타는 자신의 몸을 보며 정대의 혼이 느끼는 미련과 해방은,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고통을 상징합니다.
시신을 싣고 오는 군인의 트럭, 겹겹이 쌓이는 시신들, 썩어가는 몸들... 타는 시신들을 보며 겁에 질린 어린 병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정말 혼이 있다면, 본인의 몸을 보는 정대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장을 읽으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3장 일곱 개의 뺨 – 은숙의 이야기
3장은 출판사 직원 은숙의 시점이에요. 은숙은 5·18 이후 검열과 감시가 심해진 사회에서 살아가요. 출판사에서 일하며, 검열관에게 뺨을 맞는 등 부당한 폭력과 억압을 겪죠.
동호와 함께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닦던 은숙은 그날, 땀과 비에 찌든 옷을 갈아입고 상무관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진수는 가두방송을 할 여자 3명만 남고 나머지 여자들은 설득하여 돌려보내요. 도청을 나와 병원에 숨어 있던 그녀는 그날, 도청 쪽에서 들리는 총소리를 들으며,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자신을 데려가려는 은숙을 피해 계단으로 달아나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떨고 있던 동호를 떠올려요. 그녀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꿈속에서 동호를 만납니다.
- 3장은 일상으로 돌아온 이들이 겪는 사회적 억압과 상처를 다룹니다. 은숙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겪는 일상 속의 두려움과 상처,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살아남으려 했던 건 아니었다'
동호를 남기고 나온 것에 대한 죄책감일까? 이 말이 왜 살아남은 자신을 책망하듯, 자책하듯, 죽은 이들에게 미안해하는 것 같이 들릴까?
P. 89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4장 쇠와 피 – 복학생의 고문
4장은 대학 복학생의 시점으로, 계엄군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과정을 그려요.(우리가 익히 보고 들어본 끔찍한 고문들)
복학생과 한 조였던 진수. 마지막 밤 도청에 남은 이들은 유서를 쓰고, 계엄군이 곧 다다를 거라는 무전을 듣고 진수는 남아 있는 중고등학생의 아이들에게, 항복해서 살 길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두 손을 들고 항복하며 나온, 동호를 포함한 어린 다섯 명의 아이들에게 흥분한 장교는 총을 갈겨 버립니다.(소설 속 표현)
당시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한 남자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 포상금이 내려왔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의 동료 중 하나가 한 말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영재,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진수, 매일 혼자서 죽음과 싸우고 있는 복학생.
- 4장은 고문실의 냉혹함,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폭력의 극한을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담고 있어요.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에게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일까?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만들었다고 하나, 모든 이가 그렇게 잔인하게 행동하지는 않을 텐데.. 사람마다 타고 나는 천성이 있다는 생각과 성악설등을 생각나게 만들었어요.
P.135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5장 밤의 눈동자 – 임선주의 시선
5장은 노동운동가 임선주의 시점이에요. 그녀는 5·18 이후에도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지만, 그때의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날 소총을 소지하고 과거 방직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한 전적으로 보안부대로 이송된 그녀는 여자이기에 받았던 끔찍한 고문들로 현재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요.
시민군에 관한 논문을 쓴다는 윤은 그녀에게 그녀가 겪은 일을 직면하고 증언해 주기를 부탁하지만 그녀는 차마 본인이 겪은 일을 얘기할 수가 없어요.
- 5장은 다시 그날이 되어도 똑같이 했을 거라는 그녀는 밤마다 당시의 기억에 시달리며, 잊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 장은 사건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 보여줘요. 같은 여자로서 그녀가 겪은 끔찍한 고문은 고문을 행한 인간이 인간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P.173
오래전 동호와 은숙이 조그만 소리로 나누던 대화를 당신은 기억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은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6장 꽃 핀 쪽으로 – 동호 어머니의 이야기
마지막 6장은 동호 어머니의 시점이에요. 아들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살아남은 가족들의 아픔이 더 잔잔하게 그려집니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은 동호를 데리러 다시 간 도청에서, 둘째 아들마저 잃게 될까 두려움에 집으로 돌아섰던 그날을 회상하고, 정대 남매에게 셋방을 준 것을 후회하다가 그 생각을 한 자신을 자책해요. 큰 형은 마지막날 어머니만 보낸 둘째를 탓하고, 서울에 있어 그날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면서, 탓하는 형을 원망하죠.
이렇게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일 그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또 다른 가족들도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살아가죠.
- 6장은 이 장은 남겨진 가족의 고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남겨진 가족의 아픔을 통해, 역사의 비극이 개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보여줘요.
6장은 어머니가 아들 동호에게 말하듯이, 편지를 쓰듯 써져 있어 어머니의 슬픔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져 읽는 내내 눈물이 났어요.
에필로그
한강 작가가 서울로 오기전 살았던 그 집으로 이사온 아이.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그 애를 기억합니다. 그해 추석 어른들이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눕니다.
'형님네 살던 집주인이 문간채를 사글셋방으로 내놨는디,주인집 아들하고 동갑먹은 애기가 그 방에 살았다요. ㄷ 중학교에서만 셋이 죽고 둘이 실종됐는디, 그 집에서만 애들 둘이......'
아버지가 가져온 사진첩에서 본 장면을 잊지못합니다. 한강 작가는 그날의 자료들을 읽고 또 읽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며 동호의 형도 만나게 됩니다.
P. 211
사실 고민했습니다. 나는 할 말도 없는데 만나면 뭐하나. 그러다가,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니까.
그럼요, 어머니가 계셨다면 망설이지 않고 만났을 겁니다. 놔주지도 않고 끝없이 동호 이야기를 했겠죠. 삼십 년 동안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P.213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마무리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5·18의 기록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국가 폭력의 참혹함, 그리고 기억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에요. 읽는 내내 힘들고 아프지만,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낸 평범한 이들의 용기와 슬픔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한강 작가의 섬세한 문장과 치밀한 고증 덕분에 더욱 진실하게 다가와요.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게 될 거예요. 5·18을 제대로 알고 싶은 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은 분께 꼭 권하고 싶어요.